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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회고

· 15 min read

서론

글또 9기에 참여하게 되었다. 원래는 글을 쓸 목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그동안 공부하며 노션에 정리했던 것들을 블로그에 올리고 싶었고, 그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아서 참여했다. 노션에 정리했던 것들은 환경 구축 방법, 간단한 명령어와 개념 정리 등등으로, 미래의 내가 참고하고자 적었던 것들이다. 내용이 깊지도, 많지도 않았다. 그런데 9기 참여자분들이 제출한 글을 보고 있으니 “튜토리얼” 정도의 정리본을 제출하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고, 원래 참여한 목표와는 다르지만 “글을 한 번 써보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023년 회고글을 작성하게 되었다.

커리어 돌아보기

통계학과를 다니던 대학교 시절, 우연찮게 코딩(파이썬)을 접하게 되었다. 통계학도 재밌었고 파이썬도 재밌었는데, 두 개를 합치면 인공지능이 된다고 해서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아즈라는 빅데이터 연합 동아리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에 대한 꿈을 키웠다. 그 당시에도 코딩 자체가 재밌긴 해서 “개발자”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의 진로를 놓고 매우 고민을 했었는데, “원래 가던 길을 가는 것이 낫겠다” 싶어서 대학교 졸업 후 인공지능 대학원에 입학했다. 석박 통합 과정이었는데(석사 과정 없음 ㅠ), 그 당시 “엄청난 박사가 될 것이야!”라는 넘치던 낭만을 주체하지 못하고, 호기롭게 석박 통합 과정을 시작했다(석사 과정이 없었음 ㅠ). 그렇게 인턴 시간을 포함한 2년의 시간이 흘러, 학위를 마치지 못한채 휴학하고 대학원을 나오게 되었다. 쉽게 내린 결정은 아니었다. 1년 넘는 시간 동안의 치열한 고민 끝에, “AI 연구자” 보다는 “데이터 엔지니어” 혹은 “MLOps 엔지니어”가 훨씬 즐겁고, 보람차고,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했고, 그렇게 돌고 돌아 “개발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인공지능 모델 개발은 해봤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은 해본 적이 없기에, “배울 수 있는 곳”에서 커리어를 빨리 시작하고 싶었다. 대학원을 휴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좋은 기회로 스타트업에(지금도 재직 중임) “데이터 엔지니어”로 취업이 되었다. 그 당시 팀장님께서는 MLOps를 곧 바로는 아니지만 슬슬 도입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으셨다. 그래서인지 대학원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에 대해 경험한 것 + MLOps에 관심 있어하는 것을 좋게 보셨던 것 같고, 그렇게 나는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렇게 9개월의 시간이 흘러 2023년 1월이 되었고, 본격적으로 MLOps 플랫폼 구축을 시작하게 되었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분들이 “모델 연구”에만 집중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능이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지에 대한 조사부터 시작해서, 다른 회사는 어떻게 시스템을 설계하는지, 모델 관리나 코드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자동화된 배포 파이프라인은 어떻게 구성하는지 등등에 대한 스터디와 시스템 설계를 진행했다. 팀장님께서 전적으로 일임해주셔서, 즐겁게 배우고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지금도 진행중이다).

고민은 끝이 없다

대학원에서는 “어떻게 하면 엔지니어로 전향할 수 있을까? 바로 취업은 될까? 그냥 취업은 되긴 할까?”라는 고민이 많았다. 운이 좋게도 바로 취업이 되고, 좋은 기회로 MLOps 플랫폼을 구축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지만, 여전히 고민은 많다. “이대로 괜찮은가? 지금의 경험이 좋은 경험이긴할까? MLOps 플랫폼이 앞으로도 필요할까?” 등등이다. 2016년 알파고의 등장 이후로, 2017년 발표된 Transformer 논문과 Transformer 구조의 계속된 발전속에서 등장한 2022년 ChatGPT까지, AI 기술은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이제 AI 분야의 연구는 LLM을 넘어서 sLLM(small-LLM)과, 멀티모달을 향해 달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WebGPU 기술이라든가, 오픈소스인 LangChain 진영의 OpenGPTs 등등, 데이터 privacy 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나만의 LLM”을 향해 빠르게 발전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3년 후에도 과연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은 살아있을까? 소수의 뛰어난 연구자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나만의 LLM으로 대체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그들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했던 MLOps 플랫폼은 필요 없지 않을까? 그럼 내가 경험한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역시 근본인 백엔드로 시작했어야 했나?” 등등 고민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에는 답을 찾지 못한채 자책하게 된다.

조금 다른 얘기인데, 또 다른 고민도 있다. 지구가 많이 아프다. 온난화라는 용어로는 표현이 되지 않아서, “지구가 끓고 있다”라고 표현하는 시대가 되었다. “2050년에 탄소중립을 실천해요!”라는 표어는 이제 나이브한 표현이 되었고, 2030년까지가 “지구의 골든타임”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는 이제 남 얘기가 아니다. 작년에만 해도 강남에 비가 미친듯이 와서 침수 피해가 많았고(우리 회사 건물도 완전히 잠겨서 몇 달 동안이나 건물 복구가 되지 않았다), 올해 여름은 미친듯이 더웠는데, 올겨울에는 역대급 한파가 예정되어 있다. “10년 뒤 나는 살아있을 수 있는가? 살아있다고 해도,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맞는가?”라는 고민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피부에 와닿고 있다.

생각의 방에서 나가자

이렇게 진로에 대한 고민과 지구 온난화에 대한 걱정은, 나를 생각의 방에 가뒀다. 힘을 내기가 어렵고, 지금 하는 것들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회의와 허무감이 밀려온다. 그러던 중, 오늘 우연히 “서사의 위기(한병철 저서)”라는 책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스토리”와 “서사”를 개념적으로 나눠서 설명한다. 스토리는 “그냥 이야기”이고, 서사는 “나만의 이야기”이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요즘은 “서사”가 없다는 것이 이 책에서 핵심적으로 말하는 내용일 것이라고 이해했다. 진짜로 읽은 것은 아니고 들은 내용이라 부정확한 이해일 수 있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꼭 필요한 생각이었다. 생각의 방에 갇힌 이유는, 모든 것이 허무하게 보이는 이유는, “서사”가 아닌 “스토리”를 위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잠히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서사”가 있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서사”이다. 인공지능이 재밌었던 이유는, 그 기술로 인한 파괴력이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상상이 현실이 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인공지능 필드를 떠나고 싶지는 않았고, 내가 더 보람차게 일할 수 있는 “엔지니어”로서 인공지능 연구를 돕고, 그렇게 만들어진 기술을 세상에 연결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지구 온난화”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 한 순간에 생긴 서사는 아니지만, 나에겐 분명 서사가 있었다. 나의 서사 속으로 다시 들어가니, 자연스럽게 생각의 방에서 나오게 되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죽음은 언제나 있다. 오늘 내가 죽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오늘 내가 하는 일이 의미가 있게 여겨지는 이유는, 그 삶의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가 나에게 큰 의미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서사”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인 것이다.

다시 즐겁게 배우자

다시 가벼운 마음이 되었다. 오늘 내게 주어진, “배울 수 있는 기회와 삶”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내가 죽을 수도 있고,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으로 나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악용되어 살인 기계가 나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속단할 수는 없다. 생각의 방에서 나오니, 동일한 고민과 걱정도 다르게 소화할 수 있음을 느낀다. 중요한 나의 서사를 다시 한 번 적어본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서, 지구 온난화 문제 해결에 기여하는 것”. 이 방향을 위해서 나는 무엇을 해볼지 생각해본다. 사실 잘 모르겠다. 그것이 현재 내 위치이다. 인공지능 기술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데이터 엔지니어링, 모델 서빙, 기본적인 CS 지식들, 지구 온난화를 위한 기술에 대해서는 무엇이 있는지 등등 부족한 지식들이 많기에 모르는 것 같다. 지금의 내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좋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다. 그 이후에는 지구 온난화 해결을 위한 좋은 동료들을 만나러 갈 것이다. 어디로 가야하는지는, 내가 준비되었을 때 그 다음 길이 보일 것이라 믿는다.

구체적인 To-Do List를 작성하며 글을 마친다.

  1. [소트프웨어 근본 지식 습득] 일주일에 한 개 이상 ByteByteGo에 나오는 개념들을 내 것으로 만들고 블로그에 올리자.
  2. [견문 넓히기] 인공지능 기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기업에 가보자. 그러기 위해서는 이력서와 포트폴리오가 필요하다. 다음주 일요일까지 이력서 마무리 하자.